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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江東)의 보병. 동진(東晉) 때의 문인 장한(張翰)을 일컫는 말.

 

출처

 

진서(晉書)/장한전(張翰傳)

 

유래

 

오(吳) 나라 사람인 장한(張翰)은 자가 계응(季鷹)이며, 별칭이 강동보병(江東步兵, 보병은 진(晉)의 완적의 별호)이다. 장한은 글재주가 탁월했으며, 세상의 이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다. 그러자 당시 사람들이 그를 강동보병(江東步兵)이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한 시절을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도 좋지만, 당신은 충분한 명성을 떨칠 수 있는데 왜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오?" 그 물음에 장현이 말했다. "장래에 있을 명성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술보다 못한 것이라오."


강동 보병(江東步兵)이라는 말이 생긴 유래는, 위진(魏晉) 시대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에서 찾을 수 있다. 진(晉) 나라의 문인, 완적은 세상을 자유롭고 거침없이 살았던 사람이다. 또한, 자부심이 강한 인물로 세상의 속된 선비들을 백안시(白眼視)했다. '보병'은 '보병교위(步兵校尉)'라는 벼슬의 약칭으로 원래 완적의 벼슬이었다. <진서> 완적전에 따르면, 완적이 보병교위를 하려고 했던 이유는 보병의 주방장이 술을 잘 빚고, 병영의 주방에 술이 수백 곡(斛)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훗날 사람들은 이 때문에 완적을 "완보병(阮步兵)"이라고 불렀다.
동진(東晉)은 강동에 도읍을 정한 나라였기 때문에, 장한을 완적과 비교할 때 이렇게 불렀다. 당나라 때 두 씨 성을 가진 두 명의 시인에 대해, 두보를 '노두(老杜)' 두목을 '소두(少杜)'라고 부른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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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클루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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