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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집불통. 자만하여 자신의 주장만 고집함을 비유하는 말.

 

출처

 

좌전(左傳)/선공(宣公) 12년, 좌전(左傳)/환공(桓公) 13년

 

유래

 

진(晉) 나라와 초(楚) 나라가 전쟁을 벌였는데, 승부가 나기도 전에 초나라 군사들이 후퇴했다. 이에 진나라의 중군(中軍) 주장(主將) 순림보(筍林父)는 추격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부장(副將)인 선곡(先穀)은 명령을 따르지 않고 후퇴하는 초군을 추격했다. 순림보는 할 수 없이 초나라 군대를 추격했다. 추격해 오는 진나라 군대를 본 초군 대부(大夫) 오삼(伍參)은 후퇴를 멈추고 진군을 치자고 주장했고, 손숙오(孫叔敖)는 계속 후퇴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자 오삼은 급히 초장왕(楚莊王)을 찾아가 싸워야 하는 이유를 말했다.
"진나라의 지휘부(순림보)는 중군의 주장에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부장인 선곡은 고집이 세고 인정이 없기 때문에 명령에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나가면 진나라 군대를 분명 패퇴시킬 수 있습니다."


초장왕은 손숙오로 하여금 반격을 하게 했다. 이에 진군은 참패하고 초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이 이야기는 '좌전(左傳), 선공(宣公) 12년'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강퍅'이란 말이 나왔다. '강퍅'이란 말과 함께 쓰이는 말로 '자용(自用)'이 있는데, 이는 '좌전(左傳), 환공(桓公) 13년'에 나온다.
춘추시대 초(楚)무왕(武王)은 장군 굴하(屈瑕)에게 나국(羅國)을 치게 했다. 대부 두백비(斗伯比)가 굴하를 배웅하고 돌아와서 왕에게 말했다.


"굴하는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원군을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초무왕이 왕후인 등만(鄧曼)에게 묻자 왕후가 답했다. "두백비의 말은, 굴하 장군이 이전 운국(隕國)과의 싸움에서 이긴 일로 교만해진 것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굴하 장군은 우쭐해져서 필시 나국을 가볍게 여길 것입니다."
초무왕은 왕후의 말을 듣고 급히 사람을 보내 굴하에게 신중하게 싸움에 임하라는 명령을 전하게 했으나, 굴하를 따라잡지 못했다. 결국 굴하는 나국과 노융국(虜戎國)의 필사적인 방어에 대패했고, 이에 자살했다. 이 두 이야기에서 '강퍅자용'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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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클루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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