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 있을 땐 몰랐지만 없어지니 빈자리가 큰 바보 농부, 황만근의 죽음.
<작가>
성석제 1960 ~
소설가, 시인. 해학과 풍자, 과장 등을 통해 현대 사회의 다양한 인간상을 그려 내는 작품을 주로 썼다.
작품: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새가 되었네>, <재미나는 인생>
<줄거리>
농민 총궐기 대회에 참석했던 황만근이 실종되었다. 누구나 한두 달 집을 비울 수는 있지만, 황만근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동네의 모든 사람이 그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 그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마을의 젊은이는 분뇨를 퍼내면서, 혼자 사는 노인은 채소를 심으면서 황만근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 황만근은 더러운 분뇨를 늘 혼자 퍼냈고,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는 더 자주 거름을 가져다주었다.
황만근이 사는 신대리는 황 씨들의 집성촌이었다. 황만근의 아버지는 전쟁 중에 죽었고, 어머니는 그때 만근을 임신 중이었다. 황만근은 말투가 어눌하고 잘 넘어져서 마을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인정 많은 사람이었다.
황만근의 어머니는 무척 게으르고 생활력이 없었다. 그녀는 열댓 살에 시집와 황만근을 낳았고, 남편이 죽자 황만근의 할머니가 황만근과 어린 그녀를 함께 키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열다섯 살 황만근이 서른 살의 젊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농사일부터 밥 짓고 설거지하는 일까지 모두 황만근의 몫이었다. 황만근과 나란히 있으면 오누이로 보이는데, 당연히 황만근이 오빠로 보였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고 살지 않아, 또래 노인들보다 예닐곱은 젊어 보였다.
황만근이 군대 징집영장이 나왔을 때였다. 동네 바보라 황만근은 당연히 면제였지만, 신체검사와 소집면제 절차를 위해 군청에 가야 했다. 밤중에 집에 돌아오던 황만근은 토끼 고개에서 비범하게 생긴 하얀 토끼를 만난다. 토끼는 몸 안으로 황만근을 빨아들이며 '너는 여기서 죽는다'라고 말했다. 살려고 안간힘을 쓰던 황만근은 해가 뜰 때까지 버텼다. 해가 뜨자, 토끼가 소원을 들어줄 테니 자신을 놓아달라고 했다. 황만근은 토끼에게 결혼하고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그 후 자살하려던 처녀를 구한 황만근은 그녀와 가족이 되고 아들을 낳는다. 그녀는 황만근에게 동네 최초로 경운기를 들여오게 하여 사람대접을 받게 해 주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지 삼칠일 만에 집을 나가 소식을 끊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 역시 오롯이 황만근의 몫이었다. 황만근의 어머니와 아들은 입이 까다로워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 황만근은 동네에서 가축의 숨통 끊기와 손질 등을 도와주고 고기를 얻어오거나, 없으면 붕어나 메기, 미꾸라지라도 잡아왔다. 황만근은 동네의 분뇨 파내기, 마을의 풀 깎기, 도랑 청소 등 힘든 일에 누구보다 앞장을 섰다. 그는 궂은일을 맡아하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공치사도 하지 않았다. 다만 술을 매우 좋아했는데, 공짜 술을 마실 때면 반드시 쓰러질 정도로 마셨다.
어느 날, '농가부채 해결을 위한 전국 농민 총궐기대회'가 열린다는 안내 방송이 있었다. 농민 대회 전날 밤, 이장은 황만근에게 직접 경운기를 타고 참가하라고 당부한다. 밤늦도록 귀농한 민 씨와 술을 마시던 황만근은 돈을 벌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내어 농사를 짓는 이웃들을 비판한다. 그리고는 민 씨가 잠든 새벽에 경운기를 몰고 군청으로 향한다.
그러나 실제로 농민궐기대회에 경운기를 몰고 참가한 사람은 오직 황만근뿐이었다. 반드시 경운기를 몰고 가야 한다던 이장 외 다른 사람들은 트럭이나 승용차를 타고 갔다. 황만근은 고장 난 경운기를 끌고 백리 길을 달려 군청까지 갔다. 그가 군청 앞에 갔을 때 이미 대회는 끝나 있었다. 되돌아오던 길, 경운기에는 차량 표시 등이 없어 몇 번이나 사고를 당할 뻔했다. 비가 내리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경운기는 길옆의 논으로 떨어졌다. 결국 경운기에 옆에서 황만근은 얼어 죽고 말았다.
일주일 후, 황만근의 뼈가 항아리에 담긴 채 돌아왔다. 귀농했던 농부 민순정은 바보 농부, 황만근을 추억하며 묘지명을 쓰고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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