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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 일제의 만행으로 헤어진 곱단이와 만득이의 애달픈 사랑.

<작가>

박완서 1931 ~ 2011
전쟁의 상처와 가족, 여성, 소시민 등 시대의 아픔과 서민들의 삶의 애환에 관심을 가짐.
작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목>, <자전거 도둑>,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줄거리>

북한 동포 돕기 시 낭송회에서 '나'에게 시 한 편을 낭송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 무렵 나는 김용택 시인의 시, <그 여자네 집>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 시를 읽으면, 어린 시절 고향의 곱단이와 만득이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떠오른다.

'곱단이'는 아들 넷을 둔 집의 막내딸이자 귀한 고명딸이었다. '만득이'는 동네의 유일한 읍내 중학생이었고, 딸 많은 집의 외동아들이었다. 곱단이와 만득이는 마을의 마스코트이자, 우리 또래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연애하는 것을 상스럽게 생각하던 마을 어른들도, 곱단이와 만득이의 사랑을 응원했다. 두 집안은 인품이나 재력도 비슷했기에, 동네에서는 두 사람의 결혼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곱단이는 꽃처럼 고왔고, 만득이는 젊은이들 중 가장 똑똑해서 마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만득이가 중학교에 진학하자, 곱단이는 아버지를 졸라 소학교 분교에 입학했다. 둘은 등하교를 같이 하며, 순수한 사랑을 키워나갔다. 만득이는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오뇌의 무도'라는 시집을 끼고 다녔고, 임화의 시를 인용해 곱단이에게 편지를 보내곤 했다. 곱단이는 가끔 나에게 만득이가 보낸 편지를 보여주며 자랑하곤 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을 순탄치 않았다. 1945년 살구꽃이 피기도 전, 만득이는 징병으로 끌려갔다. 양가에서는 혼사를 치르려 했지만, 만득이는 한사코 거부했다. 만득이는 만에 하나라도, 사랑하는 곱단이를 과부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청년들이 모조리 징병이나 징용으로 끌려가자, 마을에 남은 남자라곤 중늙은이들 뿐이었다.

곱단이는 만득이를 기다렸지만, 일제의 정신대 모집이 시작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마을에선 정신대를 피하려고 짚더미에 숨었다가, 순사의 창에 찔려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곱단이는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오빠가 구해온 나이 많은 남자의 재취 자리로 시집을 가야 했다. 신의주로 시집을 간 곱단이는, 삼팔선 이남의 고향과 영영 생이별을 하게 된다. 징병에서 살아서 돌아온 만득이는, 같은 마을의 '순애'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누나가 구해놓은 일자리를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만득이를 다시 만난 건, 십 년이 채 되지 않는다. 나는 삼촌을 모시고 '고향 군민회'에 참석했다가, 장만득 씨와 순애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 부부는 유복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순애와 친분이 없었는데, 그녀가 먼저 연락을 해서 종종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순애는 만득이가 여전히 곱단이를 가슴속에 품고 산다며 내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순애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지만, 불평이 반복되자 나중에는 만득이가 불쌍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순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장례식장에 갔다. 20대의 모습을 영정사진으로 쓴 것을 보고, 나는 순애가 곱단이를 얼마나 질투했는지 알게 되었다.

몇 년 뒤, 나는 '정신대 할머니를 돕는 모임'에서 장만득 씨를 다시 만났다. 나는 여전히 그가 곱단이를 못 잊는 줄 알고 화를 냈다. 그러나 장만득 씨는, 그건 순애의 오해일 뿐이라고 했다. 그가 이 모임에 나온 이유는,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에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만득 씨는, 일제의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나 면한 사람들 모두, 제국주의의 희생자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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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클루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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